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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석조전앞 정원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의 가을 아침 주말이었습니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바람은 조용하게 불었으며 이런 날씨에 집에 있기엔 너무도 아까운 날이어서 가족들 챙겨서 산책 가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던 덕수궁을 선택하게 된 건 궁궐 중에서도 규모가 크지 않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겠다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현존하는 궁궐 중에서는 작지만 예전 모습은 지금의 3배 더 컸었다고 합니다.

    황궁으로 변한 덕수궁

    덕수궁은 조선의 14대 왕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난 갔다 돌아온 후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을 임시 거처로 삼으면서 처음 궁궐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 가면서 정릉동 행궁에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경운궁에 왕이 다시 머문 것은 조선 26대 왕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잠시 머물다가 경운궁으로 옮겨 오면서부터입니다. 고종은 경운궁으로 돌아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고종은 대한제국의 위상에 걸맞게 덕수궁에 여러 전각을 세우고 당시엔 현재 규모의 3배로 컸다고 합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불려졌습니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할 때까지 덕수궁에서 지냈으며, 고종 승하 이후 덕수궁은 해체 및 축소가 되었습니다. 대한제국 황제가 살았던 황궁은 안타깝게도 그 시절 모습을 보존하지 못하여 가슴 한견이 시리도록 아프게 저려옵니다.

    문화해설사를 통해 들은 덕수궁의 숨은 이야기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세우시고 황제께서 정치를 살피시고, 생활을 하셨던 곳입니다. 덕수궁은 처음 방문이었고 그저 한 바퀴 가볍게 둘러보았습니다. 어떤 포인트와 관점으로 봐야 할지 감이 오지도 않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이런 곳에 와선 다시 정문으로 돌아가 문화해설 시간을 기다려 해설사 선생님과 함께 둘러보니 한 층 흥미롭고 해 주시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자꾸만 귀를 쫑긋 하게 되었습니다.

     

    매표소가 있는 곳은 대한문이고 이 문을 통과하면 금천교가 보입니다. 금천교는 풍수지리적인 이유와 외부와의 경계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다리 밑에는 금천이 흐르는데, 이곳을 건널 때는 세 개의 길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운데 10~15cm가량 높게 지어진 곳은 왕과 고위 대신들이 다니는 길이고 옆쪽의 낮은 곳은 하위 계급의 대신들과 신하들이 걷는 길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궁궐 안쪽으로 세개의 길이 나 있지 않고 금천교 다리까지만 남아있는 것은 순종이 차를 타고 다니셨고, 길이 울퉁불퉁하여 차가 다니기에는 조금 불편하여 바꿨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일제가 아스팔트로 뒤엎어 버린 게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궁궐에 대해 알면 재미난 것들이 많습니다. 모든 대문 천정을 보면 그물이 처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그물을 부시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현대에 와서 생긴 것이 아닌 건물이 지어졌을 때부터 설치가 되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 그물을 설치했을까요? 이유는 날아다니는 새들이 둥지를 짓게 되고 그러면 그 새들의 변들이 예쁘게 칠 해 놓은 그림들을 훼손시킵니다. 게다가 새들의 천척도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천적인 뱀들도 출몰하게 되고 그러면 궁안에서 살생이 일어나게 됩니다. 궁궐 안에서는 살생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이야기는 여태껏 몰랐었기에 알고 나니 궁궐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져갔습니다. 선조들께서는 모든 것에 이유와 의미를 담으셨으며, 자연과 동물을 아끼고 서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슬기가 묻어 있었습니다.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와 연회 관람

    우연히 방문 했던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단에서 주관한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와 연회'를 보여주는 공연이 있었습니다. 대한제국 외국공사 접견례는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른 나라 외교관과 만나는 장면을 재연하는 행사입니다. 대한제국은 근대화와 함께 격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여러 나라들과 동등한 외교를 펼치며 자주 독립국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하였습니다.

     

    따라서 세계를 향하여 황제국으로의 위엄과 근대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연회는 초청된 공사들을 위한 공연이 진행되었으며, 한국과 서양의 문화가 절묘하게 어울어져 진행되었습니다. 신식 군악대는 유럽 행진곡, 떡갈나무에 걸린 노란 리본, 도레미송 세 곡을 연주해 주어 처음에 흥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다음으로는 검무, 사자춤, 포구락 전통예술이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전통공연을 볼 수 있게 되어 연회에 초청된 공사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특히 포그락은 더 생소했는데, 구멍에 주머니를 던져넣는 것을 놀이를 묘사했습니다. 구멍에 넣으러 가기까지의 신남과 설렘을 표현했습니다. 구멍에 못 넣을 때는 얼굴에 낙서를 하고, 구멍에 넣었을 때는 꽃을 받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아무도 넣지 못하여 모두 얼굴에 낙서를 하는 장면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었습니다.

     

    그저 가볍게 방문한 장소에서 뜻밖에 공연도 관람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새로운 역사에 대해 알게 되어 흥미로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청명한 가을날에 잘 정돈된 정원을 산책하고 왕이 된듯 궁궐을 둘러보니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습니다. 익숙함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신선함을 느끼고 싶다면 덕수궁을 찾아가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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